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딜레탕티즘 : 예술이나 학문 따위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 삼아 하는 태도나 경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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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에 있는 책들을 얼마 전에 죄다 정리했다. 정리하는 데 꽤 힘이 들었는데, 가지고 있는 책들을 주제별로 분류하기에는 책꽂이의 칸 구분이 모자란 반면 책꽂이의 칸 넓이는 항상 남아돌았기 때문이다. 이것 저것 잡스럽게 책을 읽지만, 막상 그 잡스러운 것을 탄탄하게 읽지는 않았다. 나름 대학에 들어와서 전공을 정한 지도 벌써 두 해가 다 되어 가는데, 전공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닥 많지 않다. 지금도 나와 같은 전공을 선택하고 싶어하거나, 관심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에게 어떤 책을 추천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. 기껏해야 얇은 에세이집, 시평집이거나 아예 두꺼운 철학서 말고는 내가 읽고 베던 책이 없다. 정리를 다 해 놓고 보니 '대체 나는 그 동안 뭐했나?' 싶어서 한참을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.
작년인가, 제작년인가 여튼 인상이 험상궂은 한 선배가 나에게 '시시껄렁한 책 말고 원전을 읽어라' 하며 핀잔을 줬었다. 나도 학문이라는 걸 평생의 업으로 삼을 지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, 이게 취미가 되어도 좀 탄탄하게 기초를 갖춰 놓는게 좋지 싶어서 원전을 찾아서 깨작깨작 읽었다. 그런데 원전이라는 게 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고, 두께가 얇은 것도 아니어서 하나를 잡고 읽으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. 내 잡식성은 그러한 인내를 좀체로 견디질 못했고, 두꺼운 책을 잡고 있는 동안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'가지치기' 식의 책읽기 습관 때문에 집중을 잘 못했다. 그러다보니, 쉽게 잘 읽히면서도 여러 주제에 대해 발을 걸쳐놓는 시평들은 잘 읽었지만, 그런 시평들을 끌어안고 있는 두꺼운 책들은 결국 앞쪽만 까맣고 뒤쪽은 하얗게 되었다.
그런 잡식성을 정당화해주는 게, 내 전공이 가지고 있는 부박한 뿌리였다. 교수들도 몰래 학부생들에게 토로하기도 했지만, 애초에 철학과 단절하고 계량과 수학에서 시작해버린 이 100년짜리 짧은 전공은 항상 수학하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꺼림칙함을 가져다준다. 게다가 나처럼 쓸데없이 철학책이다 뒤적거리는 걸 낙으로 아는 '구시대적'인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. 물론 이 관계의 학문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에, 내가 이 전공을 때려 치울 일은 없을 것이니 어떻게든 지금을 정당화해야 했다. 한 교수의 말은 그 정당화를 가능케 해 주었는데, 그 사람은 학부생에게 이 '뿌리 없음'을 시인하면서, 이 '뿌리 없음'이 창조성의 기초가 된다고, 즉 어디에다 붙여 놓아도 잘 적용이 되고,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었다. 내 잡식성은 그런 '창조성'이라는 말에 쉽게 스스로 정당화 되었고, 그게 낳은 결과가 지금이다. 어느새 학문은 진지하게 탐구해야 할 그 무엇이라기보다는,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, 하나의 자극을 위해서 '취미'의 대상이 된 듯 하다. 그나마 그 취미의 기초는 탄탄하지 못했다.
아마추어적인 정보들이 파편처럼 내 머리에 박혀 있고, 그 파편들을 만들어 낸 잡식성은 요즘 돌아가는 세상 꼴에 시시콜콜 발언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낳았다. 뭘 하나 깊게 파면서, 그거에만 딱 할말을 하는 식의 마인드를 가지는 게 아니라, 어지간한 사안에 한 마디씩 던지면서 뭔가 사안을 아우르는 잡지식의 총체를 만들어보자는 되도 않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. 문제는 그렇게 툭툭 내뱉는 말의 근거들에 대한 전문성이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고, 그러다보니 항상 발언은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.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없으면서도, 전문 지식이 왔다 갔다 하는 사안들에 대해서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'이율배반'이 몸에 배어버렸다. 이런 모순 때문인지,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써야 할 글은 많은데 실제로 손에 잡히는 건 잘 없는 불안을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. 말의 깊이가 깊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서, 종종 우울해진다.
자콥 부르크하르트는 '딜레탕티즘'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.
취미로 하는 그림은 예술계에서 크게 무시당하고 있다. 예술은 완벽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에 평생을 바치는 대가가 아니라면 그 무엇도 아니다. 그러나 학문의 경우 한정된 분야만을 숙달하더라도 이른바 전문가가 될 수 있다. 그러나 일반적 개요를 정리하고 이를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을 없애고 싶지 않다면 가능한 한 많은 분야를 어쨌든 개인적으로 조금이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. 그래야 자신의 전문지식을 강화하고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익힐 수 있다. 그렇지 않으면 자기 전공 이외의 분야에 대해선 문외한이 될 것이고, 그런 상황에서는 대체적으로 야만인에 불과하다.(<소유와 자유>, 14쪽)(이현우, 딜레탕티슴에 대하여)
전체에 대한 조망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,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만이라도 아마추어적인 딜레탕티즘을 가져야 한다는 게 부르크하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. 문제는 나는 이 부르크하르트의 '위로'에도 불구하고, 최소한 하나의 전공이라도 알지 못하고 이리 저리 부박하게 떠다니고 있기에, 전혀 행복하지 못하다는 거다. 강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, 나는 몸으로는 알고 있는 듯 한데, 머리로도 알고 있는 듯 한데, 전체로서의 내가 모르는 듯 하다. 습관에서부터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나.
